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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인간 존재의 한계 깨닫고 겸손 잃지 말아야 [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5. 하느님의 구원경륜②- 인간 존재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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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대천동성당 댓글 0건 조회Hit 207회 작성일Date 22-02-05 17:11

    본문

    2021.12.25 발행 [16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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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인간 존재에 대한 양면적인 특성을 직시하여 자신에 대한 한계를 깨닫고 겸손을 잃지 말아야 하며 하느님이 온전히 현존하는 거룩한 집이 되도록 불리움 받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진은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예수상’.



    근세기에 일어난 일부 과학 및 학문 분야의 발전과 성취가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와 관련해 과학 분야에서 하나의 공식처럼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유명한 행동 연구가인 안탈 페슈테틱스(Antal Festetics)가 언급한 ‘인류의 커다란 세 가지 트라우마’에 대한 것이다.



    인류의 커다란 세 가지 트라우마

    인류에게 첫 번째 트라우마를 안긴 이는 크라쿠프의 코페르니쿠스였다.(지구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두 번째 트라우마는 런던의 다윈에게서 시작되었다.(인간 역시 동물의 세계에서 출현했다) 세 번째 트라우마는 빈의 프로이트에게서 유래한다.(의식보다는 무의식이 우리 인간을 지배한다)

    안탈 페슈테틱스에 의하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프로이드의 심리학, 이 세 분야에서의 학문적인 성취는 인류에게 트라우마를 겪게 했다고 말한다. 요컨대, 이 세 가지 학문적 세계를 피상적으로 이해하거나 잘못 해석하는 것은 하느님의 집(모상)으로서 인간의 정체성 형성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고, 인간의 존엄성과 위대함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본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그때까지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이론으로 여겨졌던 천동설을 뒤엎고, 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였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과학적으로 명증되었을 때, 그리고 태양계는 은하계 일부에 지나지 않음이 밝혀졌을 때, 지구는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고 그 안에 사는 인간 존재는 더없이 왜소하게 보였다. 과학자들이 밝혀낸 사실에 따르면 이 광대한 우주 안에서 지구의 위치는 너무나 왜소하고 미소하다. 해운대 모래사장을 전체 우주로 비유할 때, 그 안에서 지구의 위치는 해운대 바닷가의 모래 한 알 정도일 것이다. 이렇게 우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지구 중심과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뒤흔들었고, 이런 세계관에 근거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위대함을 주장한 사상에도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제기한 인간과 원숭이가 같은 조상인 유인원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 또한 더욱 심각하게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에 영향을 미쳤다. 얼마 전 침팬지의 유전체 서열 해독에 성공했는데, 인간의 유전체와 침팬지의 유전체가 98% 이상 동일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단지 이 결과만을 가지고 침팬지와 인간은 같은 영장류로서 매우 유사하다는 추론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우리를 황당하게 하고 불쾌하게 만든다. 다윈의 진화론이 주장하는 인간이 원숭이와 같은 조상이라면 인간은 한낱 동물의 한 부류에 불과하며,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인간의 참된 정체성에 회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인간 생명체의 특성이 단순히 유전체적인 관점으로만 환원시켜 다른 생명체와 유사성이나 연관성을 추론하는 것은 매우 단선적이다. 인간의 독특함은 침팬지를 포함한 모든 동물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인간의 심오한 정신세계에 있다. 즉 인간의 본질은 자신을 넘어 초월 세계로 향하는 자기 개방성에 더 큰 무게를 두고 고려되어야 한다.



    인간 존재에 대한 양면적인 특성

    프로이드의 심리학은 인간의 내면세계, 정신세계가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뉘어 있다고 본다. 프로이드는 빙산에 빗대어 의식과 무의식을 설명한다. 요컨대, 인간의 정신세계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빙산의 상층부에 해당하는 의식의 세계와 대부분이 바닷물에 잠겨 있어 보이지 않는 빙산의 하층부에 해당하는 무의식의 세계로 나뉘어 있다고 보았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우리의 ‘의식’은 정신세계에서 광대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잘 것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무의식에 의해 자유의지가 조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로이드의 심리학의 영향으로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초월적인 지위에서, 단지 무의식 욕망의 지배를 받고 조종받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프로이드 이론을 과도하게 숭상하다 보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한낱 환상에 불과하고, 이미 규정된 존재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 세 가지 사건은 그동안 인간이 누구인지? 하느님의 집(모상)으로서 인간을 이해해 온 신앙인들에게 하나의 도전 거리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트라우마적인 영향을 미친 이론들에 대해 균형감을 잃지 않고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의 물질적인 차원이나 혹은 정신적인 차원, 즉 두 차원 중 한 방향으로만 치우치지 않고, 두 차원에 대한 균형감을 유지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예컨대, 인간은 모든 생명체 중에 으뜸이지만(창세 1,26 참조) 한낱 먼지에 불과한 흙으로 만들어졌으며(창세 2,7 참조), 하느님의 유일한 대화상대로서 참으로 존귀하지만(마태 7,7), 풀잎 끝에 맺힌 이슬처럼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존재이다.(이사 40, 6-7 참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 프로이드의 심리학은 각각 인간의 미소함과 비천함, 인간 내면의 속박 가능성을 보다 사실적으로 우리에게 확인시켜 줌으로써 성경의 가르침을 재확인해 주었을 뿐이다. 따라서 인간 존재에 대한 양면적인 특성을 직시하여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한계를 깨닫고 겸손을 잃지 말아야 하며, 하느님이 온전히 현존하는 거룩한 집이 되도록 불리움 받았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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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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